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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도 걸어도 포스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걸어도 걸어도는 여름날 하루 동안 가족이 모이는 시간을 통해 상실, 갈등, 체면, 그리고 애도의 방식을 세심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화려한 장면이나 극적인 사건 없이도 인물들의 삶과 감정을 충분히 담아내며, 일본영화만이 보여드릴 수 있는 고유한 정서를 선사합니다. 이 영화는 일상적인 공간과 생활의 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독창적인 연출로, 관객 여러분께 오랜 여운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걸어도 걸어도의 감성 미학과 서양 대비, 문화 코드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감성 미학

    이 작품의 핵심은 ‘여백의 미학’입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은 가족 구성원 사이의 복잡한 감정선을 과장하거나 드라마틱하게 폭발시키지 않으십니다. 대신 부엌에서 들려오는 기름 끓는 소리, 현관에 놓인 신발, 창호지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 같은 디테일한 생활 장면에 집중하십니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 여러분께서 화면에 직접 개입해 감정을 읽어내도록 유도합니다. 어머니께서 고로케를 튀기며 아들에게 무심하게 건네는 짧은 대화는 직접적인 감정 표현은 아니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상처와 여전히 남아 있는 애정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이는 일본영화 특유의 ‘겉과 속의 거리’를 인정하는 방식이며,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듭니다. 또한 배우분들의 연기는 절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울부짖거나 감정을 쏟아내는 방식 대신, 작은 표정 변화나 목소리의 떨림, 혹은 긴 침묵으로 마음을 전합니다. 이런 방식은 관객 여러분께서 그 여백을 채우며 감정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하며, 일상의 작은 순간 속에서도 큰 감정의 진폭을 경험하게 만듭니다. 고레에다 감독님의 카메라는 대체로 고정된 구도를 유지하며, 인물들의 시선과 움직임을 천천히 따라갑니다. 빠른 전환이나 극적인 음악 대신, 생활 속 소리와 자연스러운 빛을 통해 장면을 완성하십니다. 예컨대 매미 소리, 여름의 습기, 문 닫히는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언어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섬세한 연출이야말로 일본영화 특유의 감성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 대비

    가족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더라도 서양의 영화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 가족극은 갈등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후 화해나 해소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반면 걸어도 걸어도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이 영화에서의 갈등은 해결되기보다 ‘유지’됩니다. 사위와 장인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 잃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 살아남은 아들의 죄책감은 끝내 완전히 풀리지 않습니다. 대신 인물들은 농담, 짧은 핀잔, 모호한 대화로 감정을 드러내고 숨기기를 반복합니다. 이는 서양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직설적인 고백과는 다른, 일본 사회의 관계 맺기 방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음악의 사용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양 영화가 음악으로 감정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다면, 이 작품은 생활음과 침묵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덕분에 관객 여러분은 스스로 감정을 채워 넣으며 해석하는 시간을 가지시게 됩니다. 이는 관객의 참여를 요구하는 동시에 더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합니다. 카메라 연출 또한 다릅니다. 서양 영화는 종종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강하게 전달하는 반면, 이 영화는 거리를 두고 촬영합니다. 인물들 사이에 놓인 문틀이나 식탁은 시각적 장벽이자 연결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이로써 가족 간에 존재하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결과적으로 걸어도 걸어도는 ‘갈등의 해결’ 대신 ‘관계의 지속’을 강조합니다. 관객 여러분께서는 영화를 보고 난 뒤 즉각적인 해소감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가족 관계를 되돌아보며 서서히 스며드는 여운을 체험하시게 됩니다.

    문화 코드

    일본영화는 자국의 문화적 코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작품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요소는 ‘집’과 ‘식탁’입니다. 좁은 복도, 미닫이문, 작은 마당은 일본적 생활양식을 드러내는 동시에 가족의 기억이 쌓이는 장소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공간은 인물들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체이며, 시각적으로도 ‘거리 두기’의 상징이 됩니다. 특히 식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가족의 역사를 공유하는 의식이자, 세대 간의 대화가 교차하는 무대입니다. 어머니의 요리는 사랑과 통제의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며, 특정 음식은 고인을 기억하게 하는 추모의 도구가 됩니다. 이러한 요소는 일본 사회에서 전통과 일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드립니다. 세대 간 차이 또한 영화 속에서 중요한 코드로 작용합니다. 부모 세대는 책임과 효를 강조하고, 자식 세대는 자립과 개인적 선택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어느 한쪽을 옳다고 단정하지 않고, 서로의 한계를 이해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드립니다. 이는 일본 사회가 지닌 ‘체면’과 ‘본심’의 균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자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여름의 매미 소리, 습한 공기, 목욕물의 온도는 시간의 흐름과 감정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영화 속에서 걷는 행위는 삶을 이어가는 은유로 사용되며,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장면은 관계를 정리하려는 작은 의식으로 해석됩니다. 결국 이 영화가 전하는 문화코드는 ‘애도를 생활로 환원하는 법’입니다. 슬픔을 과장된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고,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태도는 일본영화만의 독창적인 정서이며, 관객 여러분께 깊은 사유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디테일을 통해 감정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절제와 여백, 생활 소리와 공간의 의미가 겹겹이 쌓여 관객 여러분의 마음에 잔잔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울림을 남깁니다. 가족영화의 새로운 깊이를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이 작품을 직접 감상하시며 여러분의 삶과 가족 관계를 되돌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