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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하코다테 감정선 음악

by halfcentury 2025. 8. 18.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포스터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하코다테라는 항구 도시를 무대로, 세 청춘이 마주하는 무기력과 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소설가 사토 유이치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연애와 우정을 오가는 삼각관계 이야기 같지만, 실상은 청춘의 공허함과 도피, 그리고 서로에게 기대고 싶어도 끝까지 다가가지 못하는 젊음의 아이러니를 그립니다. 영화 속 하코다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감정을 담아내고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기능합니다. 여기에 반복적으로 삽입되는 인디 음악들은 이들의 불안과 순간적인 해방감을 교차시키며, 관객에게도 묘한 울림을 남깁니다.

하코다테

하코다테는 일본 홋카이도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영화 속에서는 그 도시 특유의 한적함과 느린 속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인위적인 세트를 최소화하고, 실제 하코다테의 거리와 상점, 주택가, 해안도로를 거의 그대로 촬영에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 관객은 주인공들과 함께 그 거리를 거닐고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낍니다. 오래된 나무 간판이 걸린 작은 술집, 바닷바람이 스미는 해안도로, 그리고 가로등 불빛이 점점이 이어진 골목길은 영화의 색채와 어우러져 청춘 특유의 고독을 은유합니다. 특히 모토마치 지역의 야경 장면은 주인공들이 잠시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그들의 내면이 여전히 비어 있다는 사실을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영화 속 자전거 장면들은 하코다테의 개방감과 고립감을 동시에 전달하는데, 시원하게 뻗은 길 위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달리고 있습니다. 하코다테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정체와 고독이 숨어 있어, 청춘의 모순된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줍니다.

감정선

영화의 중심에는 ‘나’, ‘시즈오’, 그리고 ‘사치코’가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서점에서 일하며 사치코와 연애를 시작하지만, 이 관계는 처음부터 명확한 규칙이나 확신이 없습니다. 사치코는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도 하는 인물로, 안정보다는 순간의 감정과 자유를 중시합니다. 시즈오는 ‘나’와 함께 사는 하우스메이트로, 겉으로는 태평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사치코를 향한 미묘한 감정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습니다. 영화는 그들의 대화보다는 침묵, 시선, 무심한 행동들을 통해 관계의 변화를 묘사합니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대화는 가벼운 농담으로 가득하지만, 눈빛과 몸짓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또, 시즈오와 사치코가 단둘이 있는 장면에서는 말수가 줄고, 화면에 여백이 늘어나면서 관객이 그 사이에 숨겨진 감정을 상상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들의 관계는 명확한 결말 없이 흐릿하게 끝나며, 이는 마치 청춘 그 자체처럼 불완전하고 모호합니다.

음악의 역할

영화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음악은 이 작품의 정서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극 중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디 록과 팝 음악은 주인공들의 무기력한 하루 속에서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줍니다. 예를 들어, 클럽 장면에서는 큰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은 춤을 추지만, 그 장면의 카메라는 들뜬 표정보다는 오히려 무심한 표정과 멍하니 음악을 듣는 인물들을 담습니다. 이는 음악이 단순한 즐거움의 매개체가 아니라,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집에서 함께 음악을 듣는 장면은 대사 없이도 세 사람의 유대감을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그 순간만큼은 복잡한 감정들이 잠시 가라앉고, 같은 리듬 속에 묻혀 있다는 안도감이 생기죠. 그러나 음악이 끝나고 찾아오는 정적은 청춘의 불안정한 현실을 다시 상기시킵니다. 이처럼 음악은 해방과 허무, 친밀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표현하며, 영화의 주제를 완벽하게 보조합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단순한 청춘 로맨스가 아니라,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세 인물의 초상을 그린 작품입니다. 하코다테의 조용한 거리와 항구의 풍경은 청춘의 공허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담아내고, 음악은 그 감정을 증폭시키며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는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지만, 그 모호함 속에서 관객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대입하게 됩니다. 화려한 사건이나 감정의 폭발 없이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일본 청춘영화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